앨런 튜링은 천재인가?
튜링은 괴델의 증명을 배운 때가 1935년이다. 케임브리지 대학 수학과를 졸업하고 1년이 되던 23살인 때였다. 막스 뉴만 교수가 개설한 <수학의 근본과 괴델 정리>라는 강의를 통해서였다. 그리고는 같은 증명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구성한다. 1936년에 쓴 논문인데 컴퓨터의 원천 설계도가 드러난 논문이었다.
컴퓨터라는 도구
컴퓨터는 인류가 만든 다른 도구와는 많이 다르다. 다른 도구들은 사용하려면 대개 근육이 필요하지만 컴퓨터는 근육이 아니라 언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컴퓨터에게 일을 시키려면 글을 써야 한다. 쓴 글을 컴퓨터에 실으면 컴퓨터는 그 글이 표현한 대로 일을 해간다. 반면에 다른 도구들은 근육을 쓰지 글을 쓰진 않는다.
그래서 컴퓨터는 만능의 도구다. 컴퓨터 하나로 할 수 있는것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이런 놀라운 도구의 원천 설계도가 세상에 출현한 때가 1936년 11월이다.
앨런 튜링의 논문을 살펴보자
'계산 가능한 수에 대해서, 수리명제 자동생성 문제에 응용하면서' 이 논문은 이런 특이한 도구를 디자인 했으니 보라는 눈문이 아니다. 이 논문은 당시 수학계를 놀라게 한 증명을 수업에서 배운 튜링이 같은 내용을 자기만의 스타일로 다시 증명해본 것이다. 그런데 이 논문에서 컴퓨터의 원천 설계도가 소품으로 슬그머니 드러난 것이다. (튜링은 손기정 선생과 동년배다. 1936년 8월에 손기정 선수는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을 땄고 튜링은 같은 해 5월에 위 논문을 제출한다.)
컴퓨터의 원천 설계도
튜링은 그 증명을 단순하게 접근한다. '자동으로는 xx가 불가능하다'를 증명해야 하므로 튜링은 '자동 기계장치'가 무엇인지를 정의한다.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부품들만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을 기계장치라고 정의하겠다. 네 가지 부품들은' 이렇게 논문에 정의해간다. 그리고 그렇게 정의하면 충분하다고 설득한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자동 기계는 그 네 개의 부품으로 만들 수 있다고 그리고는 그 부품들로 아무리 기계를 잘 만들어도 수학의 모든 사실들을 뱉어내는 기계는 불가능하다고 증명한다.
이 증명에서 중요한 소품이 등장한다. 정해진 기계 부품만으로 만든 기계의 하나지만 조금 특이한 작동을 하는 기계였다. 이 특이한 기계는 입력으로 받는 것부터 특이하다. 글로 표현된 기계장치를 입력으로 받는다.
그런 입력을 받아서 그 기계가 하는 일이 뭐냐?
글자들로 입력받은 기계장치를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다. 정해진 형식의 제한된 단어들로 표현된 기계장치를 입력으로 받으므로 입력을 알아보는 것도 일정한 방식으로 할 수 있다. 즉 입력으로 받은 기계장치를 기계적으로 알아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글자들로 입력받은 기계장치가 하는 일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도 가능하다. 바로 이 보편만능의 기계가 하는 일을 고스란히 따라하는 기계를 튜링은 '보편만능의 기계(universal machine)라고 이름 붙인다. 임의의 기계를 입력으로 받아서 그 기계가 할 일을 그대로 해주는 기계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컴퓨터
바로 이 보편만능의 기계가 컴퓨터의 원천 설계도다. 기계(소프트웨어)를 글로 표현해서 넣어주면 그 기계가 하는 일을 따라 해주는 기계(컴퓨터)다. 소프트웨어를 넣어주면 그 소프트웨어대로 일을 하는 도구가 오늘날 우리가 컴퓨터라고 부르는 도구다.
기계로는 수학자를 대신할 수 없다
1928년에 대담한 꿈이 유럽 수학계에 번지기 시작한다. 당대 수학자였다 힐베르트가 독려한 꿈이었다. 힐베르트는 수학자들이 해왔던 작업 과정을 보아하니 모든 과정을 자동으로 할 수 있을 것 같다. 자동장치를 만들어서 돌리기만 하면 수학자들이 애써서 찾아내는 사실들이 모두 자동으로 술술 만들어질 것 같다.
자동장치(알고리즘)란 무엇을 말하는 걸까?
셜록 홈즈가 사건을 해결해가는 과정을 보자. 각 사건마다 내용은 제 각각이다. 하지만 매번 사건을 해결하는 논리적인 과정을 보면 같은 패턴을 반복한다. 'A면 반드시 B다, 그리고 A가 사실이다, 그렇다면 B가 사실이어야 한다.' 또는 'A가 사실이라면 지금 증상은 말이 안된다, 그렇다면 A는 사실이 아니다' 등의 것들이다. 이런 것들이 자동으로 적용할 수 있는 추론규칙이자 패턴이다. 셜록 홈즈는 사건마다 A와 B에 구체적인 경우를 대입해서 새로운 사실을 유추해낸다. 이때 하는 일이란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들을 대입할 수 있는 추론규칙을 찾는 것이다. 이 스텝은 자동화할 수 있는 단순 작업이다. 추론규칙의 전제에 현재 알고 있는 사실을 대입해보면 그 규칙의 결론에 해당하는 사실이 드러난다.
적용 가능한 추론규칙을 동원해서 새로 알게 되는 사실들을 모두 모아갈 수 있다. 이렇게 연쇄반응 하듯이 새로운 사실을 생산해내는 엔진은 셜로 홈즈의 머릿속에 있는 몇가지의 고정된 추론규칙이자 패턴들이다.
힐베르트가 제안한 문제는 수학자들이 사용하는 이런 규칙들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이렇게 찾은 유한 개의 추론규칙들이 부품이 되는 자동장치(알고리즘)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 기계의 손잡이를 아무 생각없이 돌리기만 하면 새로운 사실들을 모두 뱉어내는 그런 기계를 만들수 있을것 같다고 그런 기계를 만들자고 힐베르트는 수학자들을 자극한다. 자동으로 모든 수학의 사실을 술술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꿈이었다.
하지만 이 꿈은 3년 만에 산산이 부서진다. 괴델이라는 25살의 수학자였다. 괴델을 그 꿈은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고 증명해버린다. 아무리 정교하게 자동기계를 만들어도 수학의 모든 사실을 샅샅이 뱉어내게 만들 수는 없다고 증명한다.
이 증명의 내용이 1935년 튜링을 만난 것이다. 38세의 막스 뉴만 교수가 개설한 강의에서 였다. 그 강의는 괴델의 증명을 하나하나 강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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